In Through the Out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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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n Through the Out Door》는 1979년에 발매된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은 밴드의 어려움을 반영하여, 존 폴 존스와 로버트 플랜트의 영향력이 커지고 지미 페이지와 존 본햄의 참여가 줄어든 가운데 제작되었다. 앨범의 커버는 6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으며, 힙노시스가 디자인했다. 발매 직후 빌보드 200 차트에서 7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등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신시사이저 사용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2015년에는 리마스터 버전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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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rough the Out Door - [음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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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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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스튜디오 앨범 |
아티스트 | 레드 제플린 |
발매일 | 1979년 8월 22일 |
녹음일 | 1978년 11월 - 12월 |
녹음 장소 | 폴라 스튜디오, 스톡홀름, 스웨덴 |
장르 | 하드 록 아트 록 |
길이 | 42분 35초 |
레이블 | 스완 송 |
프로듀서 | 지미 페이지 |
싱글 | |
싱글 1 | Fool in the Rain"/"Hot Dog |
싱글 1 발매일 | 1979년 12월 7일 |
평가 | |
올뮤직 | AllMusic review |
데일리 텔레그래프 | The Daily Telegraph |
인기 음악 백과사전 | The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
뮤직하운드 록 | 4/5 |
롤링 스톤 앨범 가이드 | The New Rolling Stone Album Guide |
스매시 히트 | 7/10 |
톰 헐 - 웹에서 | B+ |
빌리지 보이스 | B+ |
차트 성적 | |
미국 | 1위 |
영국 | 1위 |
일본 | 2위 |
인증 | |
미국 음반 산업 협회 (RIAA) | 플래티넘 |
영국 축음기 협회 (BPI) | 플래티넘 |
이전/다음 앨범 | |
이전 앨범 | The Song Remains the Same (1976) |
다음 앨범 | Coda (1982) |
2. 배경
1970년대 후반, 레드 제플린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1977년, 로버트 플랜트의 아들 카락이 복부 감염증으로 사망하면서 밴드는 큰 슬픔에 잠겼다.[69] 밴드는 세금 문제로 영국을 떠나야 했고, 이는 그들의 활동에 큰 제약을 가했다.[5] 이러한 상황은 앨범 제목인 "In Through the Out Door"(바깥 문을 통해 안으로)에 반영되었는데, 이는 밴드가 다시 대중의 관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어려움을 상징한다.[5]
밴드는 1978년 9월에 자료를 리허설하기 시작했고, 6주 후 스웨덴 스톡홀름의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다.[22][49] 이전 레드 제플린 앨범들과는 대조적으로, ''In Through the Out Door''에서는 베이시스트 겸 키보디스트 존 폴 존스와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졌으며, 드러머 존 보넘과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종종 녹음 스튜디오에 제시간에 나타나지 못했는데, 보넘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고 페이지는 헤로인 중독과 싸우고 있었다.[6] 존스는 "그때쯤에는 두 개의 뚜렷한 진영이 있었고, 우리[플랜트와 나]는 비교적 깨끗한 진영에 있었다"고 회고했다.[7]
《In Through the Out Door》는 이전 앨범들과 달리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두드러지며,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은 곡들이 수록되었다. 존 폴 존스는 7곡 중 6곡의 작곡에 참여하여 앨범의 음악적 방향을 주도했다.[49] 특히 야마하 GX-1 신시사이저를 도입하여 전곡에 키보드를 사용했다.[49]
밴드는 1978년 9월부터 자료를 만들기 위한 리허설을 시작했고, 6주 후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다.[22] 이전 레드 제플린의 음반들과는 달리, 《In Through the Out Door》는 베이시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존 폴 존스와 보컬 로버트 플랜트의 영향력이 더 컸다. 반면, 드러머 존 본햄과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는 상대적으로 참여가 적었는데, 이는 존 본햄이 알코올 중독으로, 지미 페이지는 헤로인 중독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6] 존스는 "그때쯤에는 두 개의 뚜렷한 진영이 있었고, 우리[플랜트와 나]는 비교적 깨끗한 진영에 있었다"고 회상했다.[7] 많은 곡들이 낮에 플랜트와 존스에 의해 조합되었고, 밤늦게 페이지와 본햄이 그들의 부분을 추가했다.[8] 존스는 야마하 GX-1 신시사이저를 구입한 후 새로운 재료를 만들도록 영감을 받았으며, "로버트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었는데, 전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밝혔다.[9]
폴라 스튜디오에서의 녹음 세션 이후, 이 음반은 플럼튼에 있는 페이지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혼합되었다.[2] 〈Wearing and Tearing〉, 〈Ozone Baby〉, 〈Darlene〉은 이번 음반 세션에서 녹음되었으나 공간 제약으로 인해 삭제되었다. 이 곡들은 모두 나중에 《Coda》에 수록되었다.[62]
3. 녹음
존 폴 존스는 이 앨범 제작에 신시사이저의 최고봉인 야마하 GX-1을 도입했다.[49] 전작 프레즌스에서는 키보드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전곡에서 존스의 키보드가 사용되었다. 존스는 야마하 GX-1에 영감을 받아 "이전에는 없었던 로버트와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었다.[9] 많은 곡들이 낮에는 플랜트와 존스에 의해 함께 만들어졌고, 페이지와 보넘은 늦은 밤에 그들의 파트를 추가했다.[8][48]
폴라에서의 녹음 세션 이후, 앨범은 페이지의 개인 스튜디오인 플럼턴 플레이스 (Plumpton Place)가 있는 플럼턴, 이스트 서섹스 (Plumpton)의 그의 집에서 믹싱되었다.[2] 믹싱은 1979년 2월에 완료되었다.[49]
이 앨범 세션 동안 녹음되었지만 공간 제약 때문에 제외된 "Wearing and Tearing", "Ozone Baby", "Darlene"은 나중에 코다에 수록되었다.
4. 음악적 특징
이 앨범은 기타가 아닌 신시사이저를 주체로 한 사운드에 대해 기존 팬들의 반발도 있었지만,[56] 1980년대의 음악을 앞서간 곡도 있어, 두비 브라더스처럼 새로운 모습을 예감하게 하는 것이었다.[52]
5. 커버 아트
이 음반의 커버 아트는 힙노시스의 스톰 소거슨이 디자인했다.[74] 1980년, 힙노시스는 《In Through the Out Door》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패키지 음반상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75]
오리지널 음반 커버는 평범한 갈색 종이 가방처럼 생겼으며, 안쪽 슬리브는 물에 닿으면 영구적으로 색이 변하는 흑백 삽화가 있었다. 6개의 서로 다른 커버는 모두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올드 압생트 하우스를 재현한 런던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으며, 바에서 이별 편지를 태우는 남자의 같은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묘사했다.[10] 앨범 구매자들은 겉면의 갈색 종이 슬리브 때문에 어떤 커버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힙노시스의 스톰 소거슨은 이 디자인에 대해 "앨범의 사운드에 딱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모델을 맡은 남자는 소거슨의 친구라고 한다. 갈색 종이 봉투에 넣는다는 아이디어는 피터 그랜트가 "제플린이라면 갈색 종이 봉투에 넣어도 팔릴 것이다"라고 말해서 "그대로 해줬더니 그의 말대로 되었다"라고 한 것이다.[52]
6. 발매 및 반응
이 음반은 1979년 8월 15일에 발매되어 빌보드 차트 2주째에 1위에 올랐으며, 발매 며칠 만에 170만달러이 팔렸다.[76] 앨범 발매와 함께 레드 제플린의 모든 앨범이 1979년 10월 23일부터 11월 3일 사이에 빌보드 200에 다시 진입하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76] 이 앨범은 7주 동안 미국 최고 자리를 지켰고, 1979년 9월 말까지 300만달러이 팔렸다.[76]
1977년 로버트 플랜트의 아들 카라크의 사망[76]과 밴드가 영국에서 겪은 세금 회피 이후의 어려움을 묘사하기 위해 밴드에 의해 앨범명이 명명되었다.[5]
1980년 1월, 〈Fool in the Rain〉이 싱글로 발매되어 음반을 홍보하였으나, 싱글 차트 상위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76]
《In Through the Out Door》는 ''레드 제플린 II''와 함께 차트 1위에 가장 오래 머문 레드 제플린 앨범이다. 현재까지 이 음반은 미국에서 600만달러이 팔렸다.
《In Through the Out Door》는 발매 당시 평론가와 레드 제플린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들은 신시사이저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 진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은 밴드가 헤비하고 빠른 사운드를 버렸다고 느꼈다.[20]
롤링 스톤의 앨범 리뷰에서 찰스 M. 영은 지미 페이지의 창의력이 감소하여 로버트 플랜트에게 좋은 재료가 거의 없었고, 플랜트의 가사는 무의미하며, 존 본햄의 드럼 연주는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멜로디 메이커의 크리스 본은 이 음반을 "전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NME의 저널리스트 닉 켄트는 이 앨범이 "잠재적인 출발점"이 더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21]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역시 빌리지 보이스에서 이 앨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19]
앨범 발매 후, 플랜트, 페이지, 본햄은 모두 이 앨범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페이지는 2004년에 "우리는 ''In Through the Out Door'' 이후, 다시 하드하고 리프 기반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우리는 그 앨범을 만들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25]
''In Through the Out Door''는 레드 제플린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두 생존해 있는 동안 발매된 마지막 앨범이었다. 드러머 존 본햄은 다음 해인 1980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콜린 라킨은 그의 대중음악 백과사전(2006)에서 이 앨범을 밴드의 이전 음반의 "정의가 부족"하지만, "존 폴 존스가 통일 요인으로 부상한 강력한 컬렉션"이라고 평가했다.[15] 그러나 닐 맥코믹은 2014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밴드에 대한 회고에서 이 앨범을 밴드의 최악의 앨범으로 평가했다.[14]
7. 곡 목록
2015년에 재발매된 디럭스 에디션에 포함된 보너스 디스크의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제목 | 비고 | 작사/작곡 | 재생 시간 |
---|---|---|---|
In the Evening영어 | 러프 믹스 | 지미 페이지, 로버트 플랜트, 존스 | 6:53 |
Southbound Piano영어 | 〈South Bound Saurez영어〉, 러프 믹스 | 존스, 플랜트 | 4:15 |
Fool in the Rain영어 | 러프 믹스 | 페이지, 플랜트, 존스 | 6:08 |
Hot Dog영어 | 러프 믹스 | 페이지, 플랜트 | 3:16 |
The Epic영어 | 〈Carouselambra영어〉, 러프 믹스 | 존스, 페이지, 플랜트 | 10:48 |
The Hook영어 | 〈All My Love영어〉, 러프 믹스 | 플랜트, 존스 | 5:51 |
Blot영어 | 〈I'm Gonna Crawl영어〉, 러프 믹스 | 페이지, 플랜트, 존스 | 5:33 |
7. 1. 오리지널 앨범
A면 |
---|
B면 |
7. 1. 1. Side one
7. 1. 2. Side two
"Carouselambra"는 10분 길이의 곡으로, 존스의 키보드가 지배적이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아우른다. 지미 페이지는 보통 라이브 공연에서만 사용하던 깁슨 EDS-1275 듀얼 넥 기타를 연주했다. 그룹은 존 보넘의 사망으로 취소된 북미 투어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연주할 계획이었다.[49] 존스가 주도한 10분 이상의 테크노팝풍 곡으로, 수수께끼 같은 가사는 로버트 플랜트가 특정 인물을 향해 쓴 것이라고 한다.[57]"All My Love"는 플랜트와 존스가 스튜디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작곡한 독특한 러브송이다. 카락에 대한 헌정곡으로, 1977년 북미 투어 중 사망했다. 존스는 이 곡 중간에 클래식에서 영감을 얻은 신시사이저 솔로를 연주했다.[49] 플랜트가 요절한 아들 카락에게 바친 발라드[58]로, 1980년 마지막 투어에서 선보였다.
"I'm Gonna Crawl"은 편안한 블루스 트랙이다. 플랜트는 이 곡을 1960년대 중반 소울 음악 스타일(예: 윌슨 피켓, 오티스 레딩)로 편곡했다. 존스는 스트링 신시사이저 편곡에 참여했다.[49] 존스가 주로 쓴 R&B풍 발라드이며, 보넘은 이 곡에서 플랜트의 가창을 "과거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칭찬했다.[58]
7. 2. 2015년 디럭스 에디션 보너스 디스크
- 〈In the Evening영어〉 (Rough Mix) (페이지, 플랜트 & 존스)
- 〈SouthBound Piano영어〉 (South Bound Saurez영어 Rough Mix) (존스 & 플랜트)
- 〈Fool in the Rain영어〉 (Rough Mix) (페이지, 플랜트 & 존스)
- 〈Hot Dog영어〉 (Rough Mix) (페이지 & 플랜트)
- 〈The Epic영어〉 (Carouselambra영어 Rough Mix) (존스, 페이지 & 플랜트)
- 〈The Hook영어〉 (All My Love영어 Rough Mix) (플랜트 & 존스)
- 〈Blot영어〉 (I'm Gonna Crawl영어 Rough Mix) (페이지, 플랜트 & 존스)
8. 참여자
wiki
참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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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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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차트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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